나는 여행지 중 동남아시아를 유독 좋아한다. 대체로 온후하지만 갑작스럽게 변덕을 부리는 날씨를 퍽 좋아한다. 베트남의 겨울 날씨는 한국의 가을 날씨와 비슷하다. 아주 따뜻하다고도 말할 수 없고, 마냥 춥다고도 할 수 없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덥지만 흐린 날에는 으슬으슬했다. 낮의 공기는 거칠었고 밤의 공기는 묵직했다.
가로수가 눈에 띄었다. 무르고 세로결이 거칠어 목재로는 부적합하지만 생의 환희처럼 곧게 뻗어자란 열대 식물이었다.
베트남에선 한국과 달리 가지 째로 꺾어 과실을 유통한다. 후숙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가지에서 과실이 익은 뒤에야 수확한다. 그래서 한국에 수입된 열대 과일에 없는, 이거 조금 상한 게 아닌가 싶도록 진득한 단맛이 난다. 하지만 캐슈애플에서는 모래 사막의 맛이 났다.
베트남의 귤은 씨앗이 있다. 금귤보다 조금 크지만 껍질을 벗겨보면 얇고 부드러워 감귤인 줄 알 수 있다. 유달리 작고 하얀 꽃이 내뿜는 향은 제주도의 감귤 꽃 향과는 또 다르다. 겨울이면 감귤 나무에 붉은 초롱과 금자 격문을 걸어 장식한다. 새해의 정령으로 임명된 귤 나무는 호주의 반팔 옷 산타클로스처럼 낯설다.
호텔을 나와 다낭의 시가지를 둘러보았다. 한국에서 사라져가는 도시와 시골이 뒤엉킨 풍경이 아름답다. 나는 유년기를 그런 다소 너저분한 개발지역에서 자랐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자질구레한 생활의 흔적에 위로 받았다. 비슷한 이유로 전신주 사이로 하늘을 어지럽게 조각난 나폴리 시가지를 좋아했다. 아마 나는 뉴욕의 아파트 지구도 사랑하게 될 터였다.
로비에 앉아 귤을 먹으며 생각했다. 베트남 사람은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걸까. 택시 기사와 수다를 떤 바에 따르면 이곳 사람은 자신의 혹은 관광객이 바라는 옛 아시아의 정취를 남기려 애쓴다. 내게 국수주의나 민족주의는 되려 허물로 여겨지지만 이들의 마음에선 좋든 싫든 중요한 부분이겠거니, 했다. 한국은 강점기를 겪으며 옛 건축물과 의복과 문화를 많이 잃어버렸다. 민족의 얼은 잃어도 좋으니 아름다운 기록은 남았으면 한다.
그러고보니 요즘 힙스터 문화로 '경성 시대'가 유행이다. 나는 개화기 로망이라 부른다. 더 놀리고 싶을 땐 강점기 패션이라 부른다. 나는 아무리 오리엔탈리즘에 젖어도 영락 없이 냉소적인 현대의 도시인이다. 날 때야 시골 출신이래도 이미 서구화가 끝났다. 차별하고 경멸하고 약자면서도 강자를 대변하는 한심한 사람 말이다.
베트남의 의약학 연구 대학에 구경을 갔다. 민트색 건물의 캠퍼스엔 야자수가 자랐다. 헝클어진 풀밭에 난생 처음 보는 거미가 기었다.
학교의 사람은 주로 오토바이를 타고 출퇴근 혹은 등하교한다. 아침에 학교 입구를 보고 있자면 물고기 떼가 바닷속에서 이루는 스쿨(school)을 도로에 덮어 씌운 듯하다. 끊임없이 울리는 크락션 소리와 도심을 덮은 흐름이 아주 장관이다. 도무지 아침 잠을 깨지 않고 배길 수 없다. 밖에 내건 옷이 새카매지도록 먼지가 피어오른다. 베트남의 먼지 공해는 차라리 미세먼지라서 눈에 보이지는 않는 서울이 낫다 싶을 정도다.
아침이면 호텔에서 G7 사의 커피를 몇 봉지 제공한다. 베트남은 '핀'이란 기구로 내리는 커피가 발달했다. 브랜드 커피 점에서도 에스프레소 머신만큼 흔히 보인다. 원액은 에스프래소나 터키 커피 저리가라하게 악몽처럼 쓰다. 사약이다. 그래서 코코넛 밀크나 연유나 계란으로 친 생머랭을 섞어 마시는 커피가 발달했다.
G7은 베트남 핀 커피를 가공해 만든 인스턴트 커피다.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네모난 봉지에 담겨 나온다. 입자가 아주 고와서 컵에 쏟아 넣다가 실수하면 반이 없어지기 일쑤다. 한국에선 흔히 보이지 않지만 찾아보면 어렵지 않게 살 수 있다. 가성비의 커피란 별명이 있는 모양이다. 이과수는 다소 밍밍한 반면 G7은 구수하고 신맛이 전혀 없다.
아침 식당에서 제공된 베트남 명물 족제비 똥 원두커피나 다람쥐 상표의 드립 커피가 내게는 영 맞지 않았다. G7은 한국의 인스턴트 중 카누 커피와 가장 비슷하다. 쓰고 구수한 맛이 가볍진 않아서 차게 마시기엔 부적절하다.
베트남의 길거리에선 오토바이에서 시선을 되찾아오기가 어렵다. 겨우 떼어내어 돌아보면 건물 사이의 규칙이 눈에 들어온다.
가정집은 정확히 직사각형 구획으로 나뉜 토지에 맞춰 세워진다. 제한 속에서 나름의 멋을 부리는 모습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1층에 기둥을 세워 탁 트이고 2층부터 사람이 사는 공간을 만드는 게 유행인 듯 했다. 1층의 차고가 부엌과 맞닿는 경우가 많아 '분명 음식에 먼지 들어갈 텐데' 라 생각했다.
땅의 분할을 보고 있자면 새삼 여긴 공산국가였지, 깨닫게 된다. 땅은 국가로부터 빌려오는 것이니 개인이 마음대로 새로 재단하여 사고 팔 수 없는 게 아닌가 한다. 베트남의 법은 잘 모르나 동서남북을 맞추어 정확히 네모지게 열을 맞춘 건물을 보면 아아, 분명 뭔가 이유가 있구만, 하고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만큼 인상적이다.
호이안은 다낭과도 호치민 시티와도 다르다. 후에와 함께 베트남의 옛 흔적을 관광 포인트로 내세운 작은 도시다. 후에가 고고학을 떠올리게 한다면 호이안은 저잣거리를 떠올리게 한다. 호이안에는 노란 건물이 많다. 꼭 하인즈 사의 겨자 색이라고 생각했다. 좁은 강물은 혼탁한 녹색으로 만지면 끈적거리지 않을까 싶게 천천히 흘렀다. 색이 많은 마을이었다. 활기가 있지만 생기는 없는, 환멸을 한 꺼풀 입은 듯한 풍경이 우울했다.
녹색의 물 위로 관광객이 띄운 초가 가득 떠내려갔다. 한번 해보는 것도 재미였을까, 생각했지만 내게는 촛불에 담을 염원이 없었다. 흰색이나 상아색이나 살구색의 분필처럼 생긴 작은 초가 주홍색 불꽃을 품고 흔들거렸다.
호이안에는 오래된 전통가옥을 계속 살려 놓기 위해 현대 기술로 개조된 건물이 잔뜩 서있다. 문화재 복원이나 보존 기술과는 사뭇 다르다. 추후를 생각지 않고 일단 살려냈다는 데에 의의를 둔 외과 수술 흉터 같은 이음매가 시간을 갈라 잡아 묶는다.
관광지를 벗어난 주변 상가 건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래되었다 뿐 이렇다 할 다른 가치를 인정 받지 못한 건축물, 그렇다고 그 건물을 밀어낼 수 없는 어떤 사정, 그 건물에 사는 사람들.
나는 바다를 좋아한다. 나부끼듯 파도를 따라 출렁이는 반짝임을 좋아한다. 수평선을 가리는 안개와 그 안개에 몸을 반 쯤 가린 암초 무리를 좋아한다. 그러나 하늘이 깨질 듯 맑아, 수평선을 중심으로 하늘과 지표가 눈부시게 파란 대칭을 이루는 풍경을 가장 좋아한다.
한낮에 호텔의 사유 해변에서 바닷바람을 맞고 있으니 나도 이 바람에 부스러져 사라질 듯했다. 마침 딱 좋게 데워져 말라죽어가는 참이었으니 정말로 부서질 수 있을 성 싶었다. 돌아오는 길에 죽은 갈매기를 보고 말았다.
밤에 커피를 잔에 담아와 다시 모래사장에 들어갔다. 물이 빠진 사구가 힘을 잃어, 샌들이 모래 속으로 빨려 들었다. 신을 벗어 왼손에 들고 걸었다. 나는 마른 모래를 딛고 서서 아득하게 펼쳐져 가는 어둠을 바라보았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크게 다르지 않은 어둠 속에서 베트남 하늘도 별이 보이지 않는구나 생각했다.
감은 눈꺼풀을 팔레트 삼아 색이 흐른다. 불빛은 춤추며 뒤섞이고, 기억이 불러온 소리는 점점 커져서, 나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 것도 듣지 못한다.
20181129 쓰기 시작하여
20181210 에 올리다.
찬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