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끊어져 간 인연들을 생각한다. 의자를 고칠 드라이버를 찾다 이것저것 발견하고 조금 웃었다.


당신은 '오늘이 평생의 죄책감이 될' 터라며 내게 미안하다 했던가. 당시에 나는 말했다. 너는 잊을 것이며 나는 괴로우리라고. 너는 나를 단지 불편한 사이로 기억할 것이고, 나는 용서와 증오와 망각 사이에서 평생을 너를 위해 갈등하리라고.


용서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그 날을 늘 떠올리지는 않지만, 잊지도 않았다. 증오 보다는 얕고 원망은 흐릿하다. 그러나 삶에 지쳐 못난 마음이 드러날 때면 나는 조용히 네 가벼운 불행을 빌어본다. 네가 좋아하는 식당이 휴업이라던가, 길을 잃어 핸드폰도 없이 찬 밤을 수십 분 오들오들 떨어야한다거나, 아끼는 물건을 잃어버린다거나, 하는 것 따위를.

투덜거림이 끝나면 나는 다시금 웃고 너와 너희들과 낡은 기억을 털어내듯 고개를 가로젓는다.


나는 네게 어색함과 불편함이자, 또한 단지 그뿐으로 남았을까.


*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이는 인연은 보통 그물망이다. 내가 너로 이어지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좀처럼 에둘러 가는 길을 찾을 수 없는 사이도 있다.

나는 종종 "내 장례식에 너는 오지 못할 거야, 내가 죽었음을 네게 알릴 사람이 없잖니." 라고 말한다. 나와 그가 지인임을 아는 이는 나의 나머지 지인 중에도 없고, 그의 나머지 지인 중에도 없다. 단 두 사람 만이 아는 관계는 떠다니는 두 세계를 붙드는 유리의 다리. 흐름은 다리를 뒤틀고 마침내 두 세계는 떠내려간다.

나의 장례식에 너는 오지 않겠지. 그러나 너의 세계에서 나는 이미 죽었으니 이걸로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오래된 사람아, 그러나 너는 내 세계에 영원한 망령으로 살아있다.


품에 넣어둔 조각이 부딪히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추억이 부딪히는 소리는 유리의 다리가 깨어지는 순간의 소리를 닮았다.


20180607 찬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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