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 개의 마지막 말을 안고 산다. 혼자서는 저주라고 부른다.


*

첫 번째는 한동안 열심히 다녔던 어느 수학 학원 선생님의 말씀이다. 우리 둘은 사이가 나빴다. 질문 할 때마다 그건 시험에 안 나오는 건데 왜 다른 사람 시간까지 낭비시키냐며 화를 내어, 모르거나 가르칠 능력이 없는게 아니냐고 받아쳤다. 중학생인 나는 말에 분별이 없었고, 젊은 수학과 대학생은 그 말이 아팠다고 한다.

그는 내게 "넌 성질머리가 그 따위라 친구도 없는 거다! 넌 평생 불행할 거야!" 라고 외쳤다. 수업이 끝난 후 A4 용지에 몇 줄의 반성문을 쓰고 손바닥을 맞았다. 끝까지 옥신각신, 서로에게 좋은 감정이라곤 하나도 없이 헤어졌다.

다음날 학원에 가니 원장님께서 오늘은 강의가 없는 날이야, 너도 장례식에 같이 가겠니, 하고 물어오셨다. 젊디 젊은 오늘의 나보다 어렸던 수학 선생은 어젯밤 술을 마시곤 오토바이를 헬멧도 쓰지 않고 몰았다가, 버스에 치여 즉사했다. 누군가는 자살이라했고 누군가는 사고라했다. 학원생 다 같이 교복 차림으로 장례식에 갔다. 꽃을 마치고 절을 하고 걸어나와 나를 기다리시던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나는 잠시 가만히 서 있었고, 끝내 울지 못했다.


**

두 번째는 대학교에서 처음 사귄 친구의 말이다. 내가 다닌 대학은 2월에 학기를 시작했다. 한 달 동안 열심히 어울려 놀았다. 그는 가끔 그의 어둠을 내게 보여주었고, 나는 어쩔 줄 몰랐지만 그의 어둠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그와 어울리던 모든 순간에 우리가 언젠가 이별하게 되리라 느끼곤 했다. 그래서였을까. 3월 중순 그가 휴학한다 했을 때 나는 한사코 뜯어말렸다. 그는 웃었다. 안돼 이미 휴학계 내버렸단 말야, 우리 다음 봄에 다시 만나자. 나는 그를 배웅했다. 기숙사 짐을 빼는 걸 돕고 혼자 떠나는 버스까지 따라가 손을 흔들었다. 약속한 봄을 기다렸다.

사흘 뒤 그가 내게 전화했다. 나도 알고 그도 아는 어떤 이와, 내가 그 둘을 알기 전부터 사이가 나빴다고 했다. 말다툼을 했다며 사과해야하는지 물었다. 나는 대화를 하고 싶은거예요? 했고, 그는 응, 했다. 나는 사과를 해서 물꼬를 트는 것도 방법이죠, 하고 소소한 얘기를 더 나누다 전화를 끊었다. 다음 날 오후, 기술실에서 과제를 하던 중에 그의 부고를 들었다. 학교 커뮤니티에 그의 유서까지 낱낱이 공개되어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현실감 없이 넘쳐흘렀다.

그는 나와의 마지막 통화에서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내가 사과를 해?" 라고 했다. 꾹 눌러담은 격정과 물기가 어린 목소리였다. 나는 그날 이후 일주일 정도 수업을 갈 때를 제외하면 동아리실에 갇혀지냈다. 하루종일 휘청휘청 캠퍼스를 배회하는 나를 발견한 선배 몇몇이 까딱하면 큰일이 나겠다며 하루 종일 나를 지키고 가둬두었다. 그 기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

세 번째는 특목고 학원 동기의 말이다. 졸업학기를 앞둔 바로 그 전 학기에 나는 학과를 옮겼다. 강의실에 가보니 낯익은 이가 있었다. 그도 그 학기에 학과를 바꾸었다고 했다. 나는 내가 먼저 들은 과목의 족보 따위를 주며 그와 어울리게 되었다. 8년 만에 말을 튼 사이였다. 서로의 어린 날을 기억하고 반대로 어린 날 밖에 기억하지 못하기에 그리 친하다고도 달갑다고만 할 수도 없는 우리는 늘 어색했다.

그는 어느 날 내게 혹시 살면서 죽고 싶었던 적이 있냐고 물었다. 도서관에 마주 앉아 과제를 하던 중이었다. 각자의 과제를 하느라 둘 다 책상만 내려다보며 대화를 했다. 내가, 다 지나간 일이 되어서 이제 어떻게든 됐어, 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단호하게 분노가 가득한 얼굴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가 대화의 어느 지점에서 무엇에 화를 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그가 겪어온 일과 겪는 일을 속속들이 알지 못했다. 내가 단지 기억하는 것은 그의 말이다. 그는 무척 화를 내며 자리를 정리하고 가버렸다. 그 직후 "너는 이 학교에서 유명해서, 나는 네가 겪은 나쁜 일을 다 알아. 나는 네가 그런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 너는 나를 몰라." 라는 카카오톡 메세지를 받았다. 나는 그 말이 터무니 없다 생각했지만, "내가 실수한 거 미안해. 왜 화난 건지 자세히 알려주지 않으면 난 몰라. 미안해. 너 괜찮니?" 하고 답장했다. 그는 곧바로 읽었으나 며칠이고 답장은 없었다. 그 뒤 3주간 수업에서 만나지 못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에 그는 학과장 님과 상담을 받고, 곧바로 자퇴했다고 한다. 학생과에서 내게 소식을 전해주었다. 나는 그가 자퇴했다는 사실도, 그리고 그의 통화기록에 내게 걸고 끊은 전화가 무수히 많았다는 사실도, 그리고 발인날과 장례식장이 언제이며 어디인지, 모두 한 통의 전화로 전해들었다. 전화를 끊은 후 기숙사에서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그의 부모님이 내게 와주어서 고맙다고 말했다.


저주는 그 말의 내용이 아프거나 표독스러워서가 아니라 다시는 번복되지 않을 말이기에 저주인 법이다. 내가 몇번을 잠들어 깨어나고 죽고 태어난들 변하지 않기에 저주이다. 타인의 죽음을 전부 안고 살아가지는 않으나, 결코 잊을 수 없는 순간과 죽음과 말이 있다. 이 말은 나의 마지막까지 나와 걷는다.




20181013 처음 쓰고

20181017 다듬어 올리다

찬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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