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일은 긴 시간일까? 49제보다 기니까 상실을 잊기엔 충분히 긴 시간인지도 몰라. 나는 무더위 속에서 생각했다. 길을 걷는 내내 두 블럭 씩 번갈아가며 좌우로 동물병원이 나타났다. 도대체 왜 이 동네에서 내가 발견한 모든 동물병원은 파란색 로고를 쓰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한 참이었다.


*

두 달전 모띠가 죽었다. 모띠는 유별나게 작고, 솔직히 조금 못생기고, 아랫 턱 바깥으로 삐죽이 튀어나온 두 개의 윗 송곳니 모두 끝이 부러진, 나이가 들며 점점 털빛이 희어진 내 8살짜리 페럿의 이름이다.
요 앞 문장을 '페럿이다'와 '페럿의 이름이다' 중 무엇으로 맺어야할 지 고민했다.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이의 이름이 그의 흔적을 지목할 수 있을까? 누군가가 실존했던 과거를 모르는 사람에게 이제 주인 없이 혼자 남아버린 이름이 그를 지칭하는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을까? 나와, 나의 세 명의 가족, 그리고 아마 조금 더 거리가 있는 몇몇 다섯도 안될 사람 만이 모띠의 생전 모습을 안다.
아, 너의 존재는 이 세상에 이토록 가느라단 연결 밖에 지니지 못했구나. 여느 야생동물보다도 네가 남겨두고 간 흔적은 적을지 모른다. 우리 인간은 이토록 추하고도 무의미함에도 얽힌 기억 속에 끈질기게 남고 마는데 말이다. 너를 세상에 잠시나마 더 묶어두는 방법은 나와 내 기억의 지속 뿐이고, 그러나 실은 그 모든 노력이 너 없이 무의미하다.


네 죽음부터 오늘까지 나는 네 일생을 담은 2천 장의 사진을 거의 매일 보았다.
언제부턴지 네가 꼬리를 비뚜름히 휘둘렀고, 언제부턴가 네 콧잔등에 검은 얼룩이 점점 생겨났고, 너는 더 이상 겨울 털에서 여름 털로 갈지 않았다. 네 심장은 내 심장보다 빨랐고, 네 호흡은 내 호흡보다 얕았다. 너는 쉽게 놀라 벌쩍 뛰고, 사냥 장난감에 달려들고, 몸에 나쁜 달콤한 간식을 탐내었고, 사람의 가방에서 초콜렛바를 훔쳐 은신처에 숨겼다.
모든 페럿이 그렇듯 네 혀도 고양이 혀처럼 까슬했다. 너는 밥을 먹고 나면 얼굴과 앞뒷 발을 카펫에 문질러 닦고, 핥고, 닭 비린내가 나는 그 입으로 내 얇은 피부를 찾아 물었다. 며칠 후에 네가 갑자기 날 물던 행동이 털도 없이 빨갛게 태어난 포유류가 어미에게 젖을 조를 때 하는 행동과 꼭 같음을 알았다.

숨이 차도록 너를 생각했다. 너를 말하고 오열한다.

너는 지금까지 내가 잃어버린 것 중 내가 가장 사랑한 아이야.

**

모띠가 죽었던 화요일, 천천히 움직이면 시간도 천천히 흐를거라 믿는 어리석은 사람들처럼 나와 어머니를 꽤 밍기적대고 있었다. 월요일 오전 7시 24분 경 축 늘어진 채 발견된 모띠가 10시 반 즈음에 입원하고 꼭 하루가 지났을 때였다. 나는 외출 준비를 모두 마친 모양새로 거실 쇼파에 웅크린 채 내가 할 수 있는 한 천천히 숨 쉬고 있었다. 어머니의 오전 용무가 끝나기를, 어머니의 통화 소리, 종이를 넘기는 소리, 커피 메이커의 작동음, 각종 소리를 들으며 뻘 속의 조개처럼 가만히 기다렸다.

오전 11시가 넘어서야 집 밖에 나섰다. 어머니와 나를 둘러싼 세상에서 시간의 흐름에 맞춰 제 속도대로 움직이는 건 자동차 뿐이었다. 생각도 호흡도 물 속에 잠긴 사람처럼 느렸다. 공기가 끈적하고 뭉글거리며 무겁다. 풍광은 비벼 뭉개진 오일파스텔 그림처럼 불분명했다. 지나다니는 길에 늘 궁금해했지만 한번도 가본 적 없이 폐업을 맞이한 국수 가게 간판만 아주 잠깐 또렷하게 보였다.
11시 40분, 동물병원 에서 전화가 왔다. "서둘러 오세요, 지금 잡아놓고는 있는데..." 라는 수의사 선생님의 차분한 목소리가 현실감을 돌려놓았다. 어머니의 시간이 제대로 흐르기 시작했다. 어머니께 갑자기 표정이 생겼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어뜨카지, 어뜨카지, 하며 운전대를 오른손으로 내려치셨다. 나는 잡아놓아요? 무엇을 요? 하고 묻고 싶은 마음을 참았다.
모띠는 기다려 줄거야, 서두르다 우리가 사고 나면 큰일이니까, 엄마 괜찮을거야, 침착하게 가자. 응?
어머니께서 기어를 바꾸신 후에 손을 포개어 가만히 쥐었다 놓았다. 그럴 리가 없잖냐는 냉소로 오른 쇄골 아래, 몸 깊은 곳에서부터 어깨가 시렸다. 수술 후 입원 전에 수의사는 모띠의 개복 사진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 때까지 내 손톱보다도 창백한 간을 가진 동물을 본 적이 없다.

도착하니 모띠는 검은색 바탕의 빨강 하양 체크무늬 작은 담요와 평소 좋아하던 하늘색 땡땡이 담요에 차곡차곡 두 겹으로 싸여서 수의사 품에 안겨있었다. 선생님이 모띠를 진찰대에 내려놓으니 어머니는 울었다. 나는 모띠와 눈높이를 낮추듯 진찰대 높이로 쪼그려 앉았다.
엄마는 더 빨리 올걸 옆에 있어줄 걸 집에 데려갈 걸 하고 울었다. 원장님은 진찰실 뒷문으로 나가 병원 로비에서 다른 환축을 문진했다. 나는, 무엇을 했더라...

담요에 싸인 모띠는 너무 예뻤다. 배에는 길게 꿰맨 자국이 있어 실밥 주변에 푸르덩덩 멍이 든 채 지혈되지 않은 피가 담요에 묻어나왔지만 아직 따뜻했다. 코는 울혈인지 뭔지 빨갛고 눈은 점액으로 반짝거렸다. 귓바퀴는 둥글고 작고 여전히 부드러웠다. 앞발이 참 작았고, 뒷발은 잔뜩 오그리고 있었다. 모띠의 발가락 뿌리에 손 끝을 묻었다. 모띠는 늘, 잘 때 내가 손가락으로 발가락과 발바닥 사이 오목한 곳을 간지럽히면 다섯 발가락으로 내 손가락 끝을 꼭 쥐었다. 발톱 혈관은 아직 빨갛게 비쳐보였지만 평소의 예쁜 선홍색보단 검었다.

그랬지. 나는 계속 모띠를 보고 있었구나.

***

나는 네가 아팠던 월요일 아침의 CCTV 기록을 본다.
내가 오전 알람을 끄고도 이불 속에서 있던 새벽에 들은 그 소리가, 네가 거듭 마룻바닥을 딛는 그 소리가, 네가 아파서 발버둥치는 소리였음을 그때 알았더라면. 네가 지쳐 바닥에 사지를 뻗고 엎드리는 모습을 본다. 네가 그렇게 탈진하고서야 오전 7시에 나는 슬그머니 내 방에서 기어나왔다. 게으르고 무신경한 나는 화면에 고작 다리 밖에 찍히지 않았다. 만약 멍청한 표정을 지은 얼굴이 찍혔더라면 지금 나는 미쳐버렸을테지.
내가 내 평생 가장 증오할 사람은 바로 그 날의 나 자신일 것이다.

나는 작업 표시줄로 마우스 포인터를 옮겨 동영상 파일을 끈다. 하얗고 작은 모띠가 툭 엎드리는 모습이 망막에 난 흠집처럼 눈 앞을 떠나지 않는다.

내가 남아서 살아가야하는 수많은 내일에 너는 결코 다시 없다는 사실을 아직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울지 않으려는 노력도, 괜찮아지려는 노력도, 너를 잊으려는 노력도 시작하지 않는다. 생명은 모래성과 같이, 여기부터라고 딱 꼬집을 수 없는 어느 부근에서 무너지기 시작해 돌이킬 수 없이 무너지고 평탄해진다. 나는 이 넓은 모래평원에서 어디부터 어디까지 얼마나가 너였는지 알지 못하는 채로 너였던 모래를 마신다.

너의 죽음에서 나의 죽음까지 중에 일흔 날을 살았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2020년 6월 9일.
열 한번 째 화요일.

찬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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