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7시에 집을 나서 서울에서 일정을 마치고 오후 7시에 귀갓길에 올랐다. 비가 내린다는 예고가 있었던 것치곤 물줄기가 산뜻하니 우산이 없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하철을 두번 갈아타고 버스를 타기 위해 지상으로 올라왔을 때에는 내 집의 샤워기보다도 세차게 미지근한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우산이 있은들 다른 사람의 우산에서, 바닥에서, 오가는 자동차의 바퀴에서 물이 튀어 간신히 가방이 젖지 않게 버티는 게 고작이었다.
버스를 타고 한참을 오는데 물난리로 길이 막혔다. 탄식하다 목적지보다 다섯 정거장 먼저 내려 집으로 걸어갈 길을 생각했다. 물이 불어 위험하겠지만 천변 공원을 통해 걸어가는 길이 가장 빨랐다. 비도 그치는 참이었으니 이제 괜찮을테지. 도로의 다리 위에서 내려다본 천변 공원에 사람이 하나 둘 있었다. 옳지. 나는 천변으로 내려갔다. 30분 걸은 후 나는 이 선택을 후회한다.
*
집에 거의 다와가는 길, 동네 작은 도서관에 살짝 못미친 곳이 완전히 물에 잠겼다. 물높이가 워터파크의 유아풀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었다. 어림 잡아 30에서 50 cm 높이를 넘나드는 갈색의 물이 맹렬히 쏟아졌다.
이 길은 내 집으로 향하는 외길이고, 물을 피하려면 다시 30분을 되돌아 걸어야했다. 집 앞의 10분 거리에서 30분을 되짚어 또 30분을 걷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미 종아리까지 물에 젖은 채였으니 말이다. 슬그머니 발을 딛여보니 물살이 무릎 바로 아래 닿았다. 반바지 밑단으로 물이 튀어올랐다. 확실히 버겁지만 이 정도라면 헤치고 걸어갈 수 있겠다. 휘어진 우산 손잡이를 가방끈에 걸어 검처럼 찼다. 물 속으로 뽑힌 풀이 흘러가는 게 보였다. 물이 깊은 구간은 100 m 정도 밖에 안되니까, 이미 하반신은 쫄딱 젖었으니 그냥 걷자. 나는 열 다섯 걸음 쯤 휘적휘적 걸은 후에 이 선택도 후회한다.
**
트위터에 워터파크에 가지 않았더니 워터파크가 내게 와버렸다는 실없는 소리를 적으며 걷어가던 차였다. 물 건너편에 오도카니 초라한 털덩어리가 놓여있었다. 움직임이 없었다. 나는 잠시 어두컴컴하니 흐릿한 시야로 건너다 본, 아마도 고양이였을 듯한 형체를 보고 기도했다. 너를 수습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물이 줄어들거든 다시 올게. 지키지 못할 약속이 되리라 직감했지만 내게는 이 방법 밖에 달리 생각나는 행동이 없었다.
***
중간 무렵까지 물길을 뚫고 걷는데 맞은편에서도 물이 흘러가는 방향을 따라 작고 하얀 몰티즈를 안고 계신 어르신이 걸어오셨다. 멈춰서서 몰티즈를 바라보니 어르신께서 "강아지 키워요?" 하고 말을 걸어오셨다. 어르신은 마스크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내 눈가가 활짝 웃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나는 죽은 내 페럿 아이를 생각하다 그냥 "네, 키웠죠." 했다. 페럿은 개가 아니라 족제비 과의 동물이지만 저도 동물을 기르긴 했어요, 같은 소리를 늘어놓을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나는 아주 오래전에 개와 함께 살았던 적이 있으니 개를 키웠다는 대답도 거짓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만져보라는 말씀에, 어르신 품 안의 작은 몰티즈에게 손등 냄새를 맡게 했다. 냄새로 인사를 건넨 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내가 두번 쓰다듬었을 때 어르신께서 "아이가 떠나서 마음 아팠겠어요." 하셨다. 여전히 영원히 마음이 아플거라 답했다. 어르신은 눈 앞에 계시면서도 오래된 사진처럼 미소지었다. 말티즈는 6살이라고 했다. 아직 한 살도 안된 듯이 아이는 작았다. 그리고 동시에 열 살은 된 개처럼 털이 조금 허전하고 기운이 없었다. 그러나 눈만은 6살 답게 아주 약한 백내장만 온 상태였다. 어르신은 내게 키웠던 개가 품종견이었느냐고 하셨다. 나는 내 슈나우저를 생각하며, 예, 하고 길게 대답했다.
"저는 모르고 이 아이를 '샀지만' 다음 아이는 입양할 거예요. 아가씨도 그렇게 해줬으면해요. 우리가 하나라도 더 살리자구요."
나는 알겠노라고, 목이 메이고 어쩐지 갑자기 온몸이 아파 웅얼거렸다. 힘을 짜내서 다시 "그럼요." 하고 말했다. 어르신은 "아이들이 안락사되는 건 너무 슬퍼요." 하고, 내게 말하는 듯이 또 하늘에 말하는 듯이 말씀하셨다. "맞아요." 라고 맞장구를 치는 내 입이 마치 손인형의 입처럼, 내 입인데 내 것 같지 않았다.
나는 가능한 환하게 웃으며 하얀 몰티즈에게 "아빠랑 산책해서 좋겠다. 건강하렴!" 이라 말한 후, 어르신께 몸을 굽혀 인사했다. 어르신이 깊은 물을 빠져나가 내가 들어온 길로 나가시는 동안 잠시 내 갈 길을 반대로 해 함께 걸었다. 어르신께서 내가 들어왔던 얕은 길로 나가셔서 안심하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비가 그쳐가는 하늘 아래 무릎 아래로 파도 치는 흙탕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이 일을 잊지 않으려 한다.
****
내 8살 페럿 아이, 모띠가 죽은지 오늘로 120일이 지났다. 고드름이 자라듯, 한 방울 씩 흘린 눈물로 마음 속에 얼음탑을 세웠다. 고통과 후회의 모양으로 세공된 내 슬픔은 가늘고 높게 자란다. 그 토대에, 내 혼을 찢어 나의 죽은 동물 아이들과 함께 봉했다. 내 안의 가장 추운 그곳엔 오직 내 눈물만이 내린다.
오늘 어르신과 몰티즈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추운 동굴의 천장에 빛이 드는 틈이 생긴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슬을 맞아 반짝이는 거미줄처럼 빛의 실이 얼음탑에 닿았다. 맞닿은 자리에 여리고도 창백한 꽃이 피었다.
나는 그 꽃에게 말한다.
너희에게 주어진 생이 나보다 짧았음을 그저 슬퍼하기보다는 하나라도 더 살릴 수 있는 행운에 감사한다.
만들어지고 버려지고, 나의 이기심이나 알량한 호혜에 의해 나를 만났던 동물 아이들이 나와 함께 한 동안만이라도 행복했기를 간절히 빈다.
인간으로 태어나, 동물을 돌보는 행위에 대등함은 없다. 내가 너희를 반려라 부르는 일은 너희의 생에 대한 모독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반대로 너희의 생에 함께한 인간이 나 뿐이었으니 너희에겐 내가 반려였으면 좋겠다.
내가 너희로 인해 행복했듯 나로 인해 너희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는 받을 수 없는 용서를 구하고, 순진하고 서글픈 마음으로 집에 왔다. 소지품만 간신히 지켜내어 온몸이 푹 젖어있었다. 온갖 것을 씻어내고 이 글을 적는다.
20200729
찬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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